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르센 벵거 (문단 편집) === [[AS 낭시|낭시]]와 [[AS 모나코 FC|모나코]]를 거쳐 [[J리그]]로 === 벵거는 1981년부터 선수생활을 은퇴하고 [[RC 스트라스부르]]의 유소년 팀을 이끌면서 스태프 생활을 시작했다. 선수로서 재능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벵거는 일찌감치 지도자 수업을 쌓으면서 감독이 될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1983년에는 장마르크 기유(Jean-Marc Guillou)가 선수 겸 감독으로 있던 [[AS 칸]]에서 1시즌간 코치 생활을 하며 경험을 쌓았고[* 장마르크 기유와의 개인적인 인연은 이후로도 오래 이어지는데 기유는 1993년부터 2000년까지 코트디부아르의 명문 ASEC 미모사의 단장, 2000년에는 코트디부아르 국가대표팀 감독 겸임까지 하게되면서 코트디부아르와의 커넥션을 만들게 됐고 아스날이 훗날 영입한 [[콜로 투레]], [[에마뉘엘 에부에]], [[제르비뉴]] 등의 코트디부아르 선수들이 기유의 추천으로 영입한 선수들이다. [[야야 투레]]는 영입 직전까지 갔지만 워크퍼밋 발급 지연으로 무산됐다.] 그 다음해인 1984년, [[AS 낭시]]에서 감독으로 데뷔했다. 부임 첫 해에 11위를 기록하며 전 시즌보다는 나은 성적을 냈지만, 바로 다음 시즌에 18위로 강등권을 기록한다. 그래도 강등은 면했지만 세 번째 시즌이자 마지막 시즌이었던 1987년 팀이 강등당하고 만다. || [[파일:external/i.telegraph.co.uk/Wenger0_2750773b.jpg|width=100%]] || || [[AS 모나코 FC]] 시절의 벵거 || 3시즌이나 맡은 팀을 강등시키고 말았지만 1987년 [[AS 모나코 FC]]가 벵거를 감독으로 선임하면서부터 벵거의 인생에 큰 반전이 일어나게 된다. 부임 첫 해인 1987-88 시즌에 모나코를 리그 우승으로 이끌었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이 해에 프랑스 최고의 감독상을 수상하게 된다. 아울러 이 때에도 어린 선수들의 재능을 알아보는 데에 일가견이 있어서 [[릴리앙 튀랑]], [[에마뉘엘 프티]] 같은 어린 재능들을 발굴해내기도 했다. 또한 최초의 비유럽인 [[발롱도르]] 수상자인 [[조지 웨아]] 역시 아르센 벵거에 의해 유럽 무대에 발탁된 선수였다.[* 게다가 5년 동안 아버지와 아들처럼 지냈다고 한다. 훗날 조지 웨아가 조국인 [[라이베리아]]의 대통령까지 된 걸 생각하면 엄청나게 성공한 제자가 아닐 수 없다.] 이후 1990-91 시즌에는 [[쿠프 드 프랑스]] 우승을 이뤄내고, 1991-92 시즌에는 [[UEFA 컵위너스컵]] 준우승을 차지하였으며, 1993-94 시즌에는 [[UEFA 챔피언스 리그]] 4강에 진출하는 등 젊고 재능있는 감독으로 승승장구했다. 그러던 중 1994년,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에서 불거져온 승부조작 의혹이 터지면서 리그 1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열심히 했음에도 자신이 팀이 만년 2위만 하게 된 이유를 알고 회의감이 온 벵거와 분위기가 어수선해진 모나코는 리그 순위가 9위로 떨어지게 되고, 결국 벵거는 보드진과의 마찰에 휘말려 1994년 해임된다. 훗날 벵거는 혹시나 자신의 선수들도 승부조작에 연루된 것이 아닌지 의심했다며 이 당시 자신이 인간 본연에 대해, 그리고 축구라는 스포츠에 굉장히 불신감을 가졌던 암흑기라고 회고했다. 그렇게 모나코를 떠난 벵거에게 [[FC 바이에른 뮌헨]]에서 감독직을 제의했지만, 정신적인 피로감이 극심하던 벵거는 거절하고 칩거에 들어간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www.arsenal.com/gun__1370432945_wenger_grampus_eight2.jpg|width=100%]]}}} || || {{{#000000 ''' 잠시 변방으로 떠났던 나고야 그램퍼스 감독시절 ''' }}} || 잠시 칩거를 하며 머리를 식히고 있던 벵거는 1995년 막 출범한 일본 [[J리그]]의 [[나고야 그램퍼스]]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벵거의 증언에 따르면 모나코에서 감독으로 있을 때 바이에른 뮌헨을 비롯한 여러 명문 클럽들의 오퍼도 거절했는데, 경질을 당한 배신감에 가장 먼저 오퍼가 오는 팀의 감독으로 가려고 결심하고 있었고 마침 J리그에서 오퍼가 와서 갈지 말지 고민을 하다가 갔다고 한다. J리그로 가기 전에 이미 벵거는 여러 우승 기록을 가진 유럽에서 주목받는 감독이었다.] 당시 나고야는 [[게리 리네커]]를 영입하는 등 우승에 대한 열망이 강했으나 2년 연속 꼴지라는 성적에 그치는 팀이었다. 하지만 벵거가 부임한 이후 구단의 전폭적인 지원과 유럽의 선진적인 축구 시스템의 도입으로 나고야는 1년 만에 리그 3위를 달성하고 [[천황배 JFA 전일본 축구 선수권대회|천황배]] 우승컵까지 들어올렸다. 그야말로 J리그의 흥행을 혼자서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뛰어난 지도력을 선보였다. 벵거는 당시 하나라도 더 배우고자 했던 열정적인 선수들을 보면서 축구의 즐거움을 다시 한 번 느꼈다고 한다. 특히 벵거는 일본의 식문화에 매우 감명을 받았는데, 쌀밥과 생선, 그리고 채소 위주로 소식을 하는 일본의 식문화에 아이디어를 얻어 엄격하게 식단까지 관리하는 팀 운영을 하는 계기로 삼았다. 2년도 채 안 되는 부임 기간이었지만 벵거는 최근에도 일본에서의 감독 생활은 자신의 감독 인생의 변곡점과 같은 시절이라고 언급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